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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히딩크의 리더십[Gus Hiddink]

11. 히딩크의 리더십[Gus Hiddink]


TV시청률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딩크의 등장은 축구에 대한 인식과 재미 를 한 차원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스타탄생이다. 축구 대표팀 내부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선수들간에 경쟁 심이 높아지고

훈련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열심히 뛰면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히딩크식 축구가 과연 성공을 거둘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고질병을 앓고 있는 한국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 으며 설혹 그의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비싼 돈이

아깝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정신력 강조하는 ‘심리전 리더십’
거스 히딩크 감독은 심리전(心理戰)의 대가이자 스포츠계에서의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표상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뤄낸 두 차례의 월드컵 4강 진출과 한 차례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리고 한 차례의 4강 진출은

모두 자신이 이끄는 선수들의 정신력과 심리적인 일치단결을 탁월한 용병술을 통해 100%까지 이끌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세계 축구의 변방인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낸 것과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 유럽 톱클래스의 선수 한 명 없이 이룬 챔피언스리그 우승(1987~1988 시즌), 그리고

올 시즌 4강 진출은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을 빼고서는 모두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자신이 이끄는 팀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장악하고 확실한 동기부여를

통해 자신감과 성취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또 프로스포츠와는 필연적인 관계인 언론 관계에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히딩크 감독이 팀 관리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팀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를 확실한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일이다. 팀의 대표격 선수를 굴복(?)시키면 팀 관리는 저절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의 ‘스타 길들이기’와 관련해서는 유명한 일화들이 있다.


‘선수 길들이기’의 달인
1980년대 말 PSV 에인트호벤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을 당시 히딩크 감독은 브라질의 떠오르는 스타였던 호마리우를

영입했다. 그러나 브라질 선수 대부분이 그렇듯 호마리우의 성격은 지나치게 자유로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PSV는

당시에도 경기 당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오전 10시에 팀 훈련을 시작하는데 호마리우는 매일 정확하게 10시에 맞춰서

클럽하우스에 나타나곤 했다. 10시가 훈련시작 시간이면 다른 선수들은 9시30분쯤 나와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시작 10분 전에는 코칭스태프로부터 오늘의 훈련 내용을 듣는 등 준비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호마리우는

언제나 딱 10시에 맞춰서 나타났고, 그래서 정작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에 나오는 것은 항상 다른 선수보다 늦었다.

더구나 코칭스태프로부터 훈련내용을 듣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황이 이랬지만 10시를 넘기면 벌금을 내도록 팀 규칙이 정해져 있어 히딩크 감독으로서는 마땅히 질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낸 꾀는 이랬다. 히딩크 감독은 “내일 10시에 경기와 관련한 팀 미팅을 할 예정이니 절대 늦지마라.

늦으면 평소의 벌금 두 배를 매기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시계 바늘을 10분 앞당겨뒀다. 물론 다른 선수들은 평소처럼 30분 전부터 클럽하우스로 나왔지만 10시에 꼭 맞춰
나타나던 호마리우는 이날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작전대로 10시10분 전부터 회의를 시작했다.

팀 전원이 회의 중인 가운데 호마리우는 정확히 10시 클럽하우스의 문을 들어섰다. 그리고는 ‘정각에 나왔으니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곧 “왜 늦어놓고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앉느냐.

팀 전원에 사과하고 벌금을 내라”는 히딩크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호마리우는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지금이 딱 10시인데 무슨 사과와 벌금이냐”고 항의했지만 히딩크 감독의 답변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내가 말한 10시는 지금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시간으로 정한 것이다.

내 시계는 이 팀의 보스인 감독의 시계이고 지금은 10시10분이다. 억울하면 다른 팀을 알아봐라.”
호마리우는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벌금을 내고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부터 그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훈련시작 30분 전에 클럽하우스에 나왔다. 히딩크 감독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한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히딩크 감독의 선수 길들이기 대상은 안정환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맡은 지

1년이 지날 시점까지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에서 뛰고 있던 안정환을 거의 팀에 합류시키지 않았다.

이탈리아 리그의 일정과 대표팀의 소집일정이 잘 맞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당시 국내 유일의 빅리그(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의 축구 리그의 규모와 수준이 세계 최고여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말) 진출 선수인 안정환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감독의 지시사항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투사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배제한

측면도 있었다.
히딩크 감독의 노림수는 안정환이 주제로 오른 인터뷰마다 잘 드러났다. 그는 인터뷰 때마다 안정환이 페루자에서

베스트11에 들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아무리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라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다. 안정환의 기량이 뛰어날지는 모르나 팀에서 정기적으로 경기를 소화해야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으니 그때쯤 소집하겠다”고 말했다. 때로는 “안정환은 소속팀에서 베스트11으로 뛰지 못하므로

완전한 세리에A 선수가 아니다”는 극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의 길들이기는 안정환이 대표팀에 합류한 시점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나타난 안정환의 모습은 벤츠 SL600을 타고 매니지먼트사의 호위를 받는 등

그야말로 개선장군처럼 휘황찬란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 장면을 2층 감독실에서 창문을 통해 모두 보고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오후부터 시작된 훈련에서 안정환은 항상

비주전팀에만 기용됐다.
이런 히딩크 감독의 작전은 이전부터 언론을 통해 칼날처럼 날려댔던 독설과 함께 안정환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안정환은 부드러운 퍼머넌트가 들어간 최신 헤어스타일을 손질하지 않은 채 훈련에만 매달렸다.

항상 깔끔하기만 했던 얼굴도 면도를 하지 않아 꺼칠해졌다. 훈련에 나서는 그의 눈에는 전에 없는 독기가 넘쳐흘렀다.

‘이래도 나를 무시할 수 있느냐’는 무언의 시위가 묻어났다. 안정환이 이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그와 포지션 경쟁을

벌어야 하는 다른 선수들도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대표팀 전체의 훈련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을 ‘왕따’시키는 작전으로 자신이 원하는 팀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후에 “안정환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상태를 좀 고쳐놓을 필요가 있었다”는 말로

자신이 심리전을 펼쳤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이처럼 선수들과의 신경전을 통해서만 팀 전력을 향상시켰다면 그를 리더십의 대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능력에서 더욱 탁월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선수들은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 전날 밤 히딩크 감독의 방으로 한 명씩 불려갔다.

좀처럼 개인 미팅을 하지 않았던 히딩크 감독은 이 자리에 불려온 선수들에게 그동안의 체력측정 결과를 펼쳐 보여주며,

“지난 5개월 동안 너의 체력이 향상된 것을 눈으로 확인해봐라. 나는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감독을

했지만 지금 우리 팀의 체력 수준은 레알 마드리드 이상이다. 너도 그 중 하나다”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리고는 “우리가 월드컵에서 맞붙을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지만 너의 실력도 절대 그들에 못지 않다.

나는 세계 최고 스타들을 직접 감독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팀이라면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당시 대표팀의 맏형었던 홍명보는 “히딩크 감독과 미팅을 한 후 네 차례의 월드컵 출전 가운데 가장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홍명보의 마음을 말 몇 마디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면 다른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수퍼스타가 아니었던 박지성과 이영표를 PSV 에인트호벤으로 데려가 최고의 선수로 길러낸 부분에서는 선수의 성장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끝까지 최고의 선수로 키워내는 히딩크 감독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박지성은 네덜란드 진출 이후 한 해 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월드컵과 소속팀을 오가며 2001년과 2002년 두해 동안

사흘 이상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혹사한 박지성은 오른 무릎 연골판의 일부분이 손상됐고 네덜란드 무대에 진출한

2004년 3월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박지성은 부상회복에다 유럽 무대 적응기를 거치면서 홈팬까지도 야유를

할 정도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였다.


이영표에 대해서도 비난이 일었다. PSV 에인트호벤의 왼쪽 사이드백으로 거의 전경기를 소화한 그였지만 네덜란드

무대에 데뷔한 첫 해에는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고 전술적인 움직임에서도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박지성과 이영표에 대한 신뢰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덜란드의 유명 축구평론가들이 잇달아

“한국 선수들을 데려온 것은 히딩크의 실수”라고 비아냥거렸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애제자들을 감쌌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현재로선 수퍼스타가 아니다. 수퍼스타를 영입하려 했으면 나는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충분히 수퍼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선수고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히딩크 감독의 이같은 태도에 네덜란드 언론은 계속 물음표를 달았다. 하지만 올 시즌 코리안 듀오가 PSV 에인트호벤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자 이들이 달았던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달 초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취재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머물 당시 현지의 유력 일간지인 데 텔레흐라프의예룬 기자는 한국 선수들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다.

“히딩크 감독이 ‘기다려보라’고 했음에도 한국 선수들이 성공하리라고 믿는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말이 결론적으로 맞았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PSV 에인트호벤의 전력에서 필수불가결한 선수가 됐다.

이제는 팀이 그들과의 재계약을 위해 목을 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기도 히딩크 감독 하면 또하나 떠오르는 것이 능숙한 언변이다.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린 그는 오랜 지도자생활을 통해 신기에 가까운 언론 대처능력을 보였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너무도 적절히 구사하며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살갑게

대하며 매스 미디어가 원하는 바를 너무도 정확히 짚어냈다.


사상 최초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뒤 상대가 세계 최강 이탈리아로 결정되자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라고 말해 한반도 전체를 감동시킨 데서 잘 보여주듯 히딩크 감독이 내뱉은 말 가운데는 그야말로 어록에 올려도 될 만한 것이 적지 않다. 당시 스포츠전문지에서는 히딩크 감독이 인터뷰 중 내뱉은 말을 따로 모아 특집판을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언론 대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말만 번지르르해서가 아니었다.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팀에 언론이 가장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를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히딩크 감독은 경기에서 패한 후 인터뷰장에 나타날 때 항상 미소와 농담을 잊지 않는다.

대부분의 축구 지도자들이 패한 후 실망스럽거나 패배의 책임을 통감하는 경직된 얼굴로 인터뷰에 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오면 은근슬쩍 애교까지 부린다.
지난 5월 5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이 좌절된 후 한국 취재진은 히딩크 감독의 ‘4강 징크스’에 대해 물었다.

두 차례의 월드컵과 한 차례의 챔피언스리그에서 준결승전에서 패해 결승에 오르지 못한 이유를 물은 것이다.
우승컵을 가슴에 품고 싶은 것은 모든 승부사의 열망인 만큼 히딩크 감독으로선 매우 뼈아플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일단 “나한테 그렇게 심하게 묻지 말아요”라고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해 예봉을 피해갔다. 그런 후

자신은 결승진출에 실패하기보다는 전력이 약한 팀을 이끌고 4강까지 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약점을 감추고 강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반면 경기에서 승리한 뒤에는 오히려 자신과 팀에 대해 엄격한 평가가 뒤따른다. ‘오늘 경기는 어떤 점이

부족했고, 이를 어떻게 고쳐나가겠다’는 식의 냉정한 평가도 내린다.
다만 자신의 팀에 대한 비판을 할 때도 히딩크 감독에게는 원칙이 있다. 절대 선수 개개인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나 비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경기와 관련한 선수 개개인의 잘못된 점을 자신의 입으로 언론에 밝히지 않는다.

“나를 믿고 따르는 부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팀워크를 저해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게 히딩크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안정환의 경우처럼 자신의 리더십을 높이기 위해 ‘언론 플레이’가 필요한 경우에는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언론을 이용한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치밀한 계산이 포함돼 있어 절대 적절한 수준을 넘는 법이 없다.


[히딩크 스타일의 의미와 메시지]

히딩크가 우리에게 던져준

첫번째 화두는 '실력주의'이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 학연이나 개인적인 친소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축구계에는 아직도 어느 감독이 들어서면

어느 선수가 중용된다는 식의 연고주의 풍토가 살아있다.

이런 것들에 억매일 필요가 없는 히딩크는 시합과 연습성적을 통해 선수들을 기용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는 선수 를

추려나간다. 특정 선수를 불러 개인면담을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선수들은 감독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실력이 평가의 전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국내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정치인, 관료들이 '일 자체'보다는 학연이나 지연, 충성심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기용하는

풍토와는 다르다.


둘째로 '지식 축구'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축구선수들은 열심히 뛰고 감독이나 코치가 지시하는 몇 가지 전술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하나의 작은 패스를 할 때도 '왜'라는 의문을 갖도록 요구 한다. 과거에는

자기 포지션만 잘 소화하면 만족스런 평가를 받았지만 히딩크는 팀 전체의 전술을 강조하기 때문에 다른 선수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까지도 모두 머리 속에 넣어야 한다.
히딩크는 훈련 때도 녹음기를 휴대하고 다니며 그때그때 분석내용을 데이터베이스화 한 다음 다음 공개미팅에서

선수들에게 제시한다고 한다.
그의 노트북에 특정선수의 이름을 입력하면 그 선수의 장단점이 동영상으로 펼쳐진다고 한다. 코칭스탭과 선수들이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는 것도 히딩크 취임 이후 달라진 모습이라고 한다.


세째는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히딩크는 취임 즉시 한국형 축구라고 할 '3-5-2'시스템을 '4-4-2'시스템 으로 바꿔버렸다. 3-5-2시스템은 나름대로 수비를

강조하는 한국축구의 강점으로 인정받아왔다. 히딩크는 이를 버리고 '토털 사커'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채택했다.

아직 선수들이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허점을 노출하고는 있지만 팬들도 공격적인 축구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 로벌 스탠다드를 반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네째는 '자신감의 회복'이다.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외국의 강팀에 대한 열등감을 없앨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선수들도 정신력을 되찾고 있다.

히딩크는 실수를 해도 나무라지 않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격려해주기 때문에 선수들이 실패에 대 한 두려움을 덜고

위협적인 패스와 돌파를 하게 된다고 한다. 선수들의 '기(氣)'를 살려준다는 말이다.


다섯째는 '규율과 자율의 조화'이다.
히딩크는 전지훈련 때 호텔 냉장고에서 주류를 모두 치우고 비디오를 상영하는 TV 유료채널을 끊어버렸다.

복장통일, 시간엄수, 휴대전화 사용금지와 같은 규율을 어기는 선수는 가차없이 내보내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훈련은 매우 자율적이라고 한다. 그는 우선 구보를 없앴다.
체력은 선수들이 각자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운동장을 몇바퀴씩 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축구에 대한 철학과 목표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는 축구가 취미이며 관중에게 축구보는 재미를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월드컵 16강 에 오를 경우 막대한 보상도 기다리고 있다 . 히딩크가 세계적인 감독이라고 해서 그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의 리더십이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리더 십은 카리스마와는 관계가 없으며 일(work)에서 나온다고 한다.

일을 달성하기 위한 분명한 목표, 책임, 신뢰(언행일치)의 세 가지가 리더십의 요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히딩크의 리더십은 오히려 평범한 것이며 다만 우리가 그 중 일부를 놓치고 있거나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한국의 경영자, 관료, 정치인들도 히딩크에게서 찾아야 할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해보자.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문제를 알고도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닌지,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이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자문(自問)해볼 일이다.

[히딩크의 성공비결]
지금까지 1990년 월드컵부터 98년 월드컵까지 한국축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짚어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다 보니 어떤 독자들은 단편적인 사항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의 큰 줄기는 2002년의 한국축구와 지금의 축구를 비교하자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걸친 칼럼은 서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견해가 달랐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나는 히딩크를 통해 우리축구가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성공에는 물론 몇 가지 환경적 요인이 존재

합니다. 우선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점입니다. 팬들의 성원과 축구협회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그에 상응하는

선수들의 정신력, 심판 판정 등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어드밴티지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환경적인 요인만으로 히딩크의 성공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히딩크 개인적인 요인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그의 성공요인 첫 번째는 리더십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칼럼에서 썼듯이 먼저 그는 노회한 심리전의 대가였습니다. 가삼현 축구협회 국제국장이 영입을 위해 히딩크를

처음 만났을 때(아마 2000년 1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의 이야기입니다.
가 국장의 의사를 전해들은 히딩크는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유도 없이 한국 선수들에게 여기에 있는 이 나무에 올라 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가 국장이

"아마 그럴 것"이라고 대답하자 히딩크는 그 때서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98년 월드컵에서 이미 한국팀의 한계를 명확히 보았던 히딩크로선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예상대로 그는 선수 장악에

쉽게 성공했습니다. 부임 초부터 언론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그는 이를 통해 선수들의 경쟁심을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여론도 중반기를 거치며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나 역시 2002년 3월27일 터키전(0-0무승부)을 보기 전까지 히딩크 축구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월드컵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이었죠. 그리고 히딩크 축구는 월드컵 개막을 일주일도 안 남기고 가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극찬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2002년의 한국축구는 이전과 무엇이 달랐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히딩크의 훈련과정을 분석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히딩크의 훈련은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임 초기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패스였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상대의 볼을 가로챈 뒤 찬스가 아닌 상황에서도 무리한 패스를 시도, 공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불필요한 드리블과 패스, 불필요한 볼 소유가 많다는 의미지요.
히딩크는 초기 3개월여간 패스의 강약 조절법과 볼트래핑 훈련을 중점 실시했습니다. 축구의 기본부터 다시 시작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4월부터 시작된 2단계 훈련에서는 선수들에게 포지션별 임무를 명확히 인식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포지션별로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된 움직임과 수비임무(이전의 한국축구에서 가장 안됐던 부분이죠), 즉 팀플레이를 주문했습니다.

이러한 히딩크의 의도가 비로소 명확하게 드러난 첫 경기가 아까 이야기한 터키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 그는 웨이트훈련 단계에 들어갑니다. 각 개인 별로 약한 부위를 근력으로 보완하는 훈련입니다.

그해 9월의 4단계 훈련부터 파워트레이닝을 도입했습니다. 평가전 바로 전날에도 지속적인 파워트레이닝을 실시,

평가전마저도 체력훈련장으로 삼았습니다. 그 때문에 평가전 결과가 나빴을 것입니다.
2002년 1월부터는 체력과 전술훈련을 동시에 병행했습니다. 그의 체력훈련이 한국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로

축구선수에게 요구되는 민첩성과 순간 스피드, 유연성 배양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전술은 상대 공격수가 1명일 때 4백,

2명일 때 3백으로 대응하는 등 상황에 따른 다양한 시스템을 체득시켰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체력지도 방법은 인터벌 훈련에서 잘 나타났습니다. 특히 히딩크 감독은 피로회복 속도를 중시했고

이를 위해 통계와 측정기구 등을 사용한 과학적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선수들이 20m 왕복달리기를

140회나 계속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피로 회복도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훈련 단계를 거쳐 한국팀은 2002년 월드컵에서 그 때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게 됩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패스입니다. 이전까지 롱패스를 많이 사용했지만 숏패스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히딩크는 공을

뺏기지 않고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패스나 횡패스를 많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 선수들의 습관은 공을 잡으면 일단 돌아서 전진패스를 했지만 상대 선수들이 달려들 때는 항상 자신이

보이는 곳에 안전하게 패스하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경기는 소극전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패스할 때 고개를 들고 하는 것도 이전과 달라진 모습입니다. 고개를 숙인 상태서 패스를 하면

부정확해 지기 때문에 히딩크는 고개를 들고 시야를 확보한 상황에서 패스하게 했습니다. 패스는 최대한 쉽게

하라는 것이 히딩크의 주문이었습니다.
히딩크는 또한 포지션별로 철저히 지역방어를 요구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축구는 미드필드 지역에서도 대인마크를

했지만 히딩크는 미드필더는 공격형이나 수비형 미드필더 모두 상대를 따라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마 한국축구에서 획기적인 변화였을 것입니다. 스토퍼는 공격 가담을 금하고 미드필드에선 지역방어를, 우리 진영

30여m 이내에선 대인마크를 하게 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히딩크가 선수들간 의사소통을 중요시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 히딩크는 지시를 내리는 선수는 넓은

경기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후방에 위치한 선수가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골키퍼는 수비수에게,

수비수는 미드필더, 미드필더는 포워드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상대를 파악하면서 해야 할 역할을 서로

알려줌으로써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만들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효과적으로 발휘되려면 선수들의 경기운영 능력이 궤도에 올라야 합니다.

공격수-미드필더-수비수가 이루는 3선의 간격이 항상 일정한 틀을 유지하면서 공수를 조율하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히딩크의 축구는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효율성 있는 축구입니다. 백패스, 횡패스가 많고 템포가 느려도 상대를 지배하는

축구(공을 뺏기지 않는 축구), 경제적으로 뛰는 축구입니다. 전진패스 위주의 비경제성이 특징이었던(뻥축구) 이전의

한국축구와 비교할 때 혁명적인 변화라 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유형을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지만 나는 좋은 선수로 키우는 지도자와 좋은 선수를 갖고 성적을 내는 지도자,

단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한국팀을 맡기 전까지 히딩크는 좋은 선수를 갖고 성적을 내는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팀을 맡은 뒤 그는 두 가지 능력을 모두 보여 주었습니다.

이번 시리즈 마지막이 되는 다음 칼럼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코엘류의 실패는 비록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바로 그가

좋은 선수로 키우는 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록
“난 선수들을 칭찬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치는 것은 우리팀 내부에서만 한다. 그것이 나와 선수의 약속이고 신의다.” [Gus Hiddink]

“난 그동안 이회택 김호 박종환 차범근 허정무 감독 등 다섯 분의 대표팀 감독을 모셔봤다.

히딩크 감독이 내가 여태껏 모신 감독님들과 가장 구별되는 것은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훈련에 임한다는 것이다.

패스연습이면 반드시 패스연습만 시킨다. 거기에 체력훈련이 함께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전체적인 훈련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을 필요로 한다.

생각하는 축구를 하지 않으면 단번에 휘슬을 분다. 30분만 훈련해도 녹초가 된다.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꾸지람은 전혀 없다. 훈련에서 안된 부분만 지적한다. 선수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술 담배 여자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장에만 나가면 엄청난 에너지로 선수들을 장악한다.” [홍명보]

히딩크는 이런 자신의 축구철학을 실현하는 데는 실전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깨지더라도 강한 팀과의 실전을 원한다. “감독의 임무는 선수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강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하고 똑똑한 선수들이 있어야 하고 이런 선수들은 큰 게임에서
나온다”는 것.

“난 어디까지나 나이며 바뀌지 않는다. 평소에 진지하지만 때로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할 때는 모든 부분에서

진지하다. 난 개방적인 성격이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다. 언론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언론을 모두 수렴하다 보면 내 축구철학이 흔들릴 수 있고 전술적인 완성도가 방해받을 수 있다.

난 오로지 나의 길을 갈 뿐.” [Gus Hiddink]

히딩크가 네덜란드 프로 축구팀 「PSV 아인트호벤」 감독을 맡고 있을 때 그 팀에 호마리우라는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다. 브라질 출신의 호마리우는 현란한 드리볼을 바탕으로 개인 돌파능력이 탁월한 선수였지만 훈련에 불성실하고

감독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말썽꾸러기였다.

오전 10시부터 훈련을 하는 날이면 감독 히딩크는 10분 前에 훈련장에 나와 있으나 호마리우는 정각 10시에 나타났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히딩크는 자기 시계를 10분 빠르게 맞춰 놓고 호마리우를 기다렸다. 10시 정각에 나타난 호마리우에게 히딩크는 왜 시간을 지키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호마리우는 10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는 자기 시계를 내 보였다.

히딩크는 10시10분을 가리키고 있는 자기 시계를 보여주며, 지금부터는 감독의 시계에 시간을 맞춰라고 지시했다.

이 일이 있은 후 히딩크는 시즌 첫 경기에서 호마리우를 베스트 멤버에서 제외했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뺐다.

벤치에 앉아서 두 경기를 지켜본 호마리우로서는 자존심 구기는 일이었다. 세 번째 경기를 앞두고 全선수가
모인 자리에서 히딩크는 베스트 멤버 리스트에 호마리우 이름을 올리고는 호마리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 버렸다.

세 번째 경기에 출전한 호마리우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선수들의 잘못을 일일이 말로 꾸짖기보다는 제제를 가해

스스로 반성하게 하는 것이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다.

축구전문 월간지 「축구 매니아」에서는 히딩크의
선수 관리 비결다섯 가지로 꼽았다.
(1) 선수들에게 동질감을 부여했다. 히딩크는 모든 선수들에게 형이나 선배와 같은 존칭을 쓰지 말고 이름을 부르도록 해,

선ㆍ후배 간에 軍紀가 엄하고, 나이별, 출신 학교별로 뭉쳐 다니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을 없앴다.

의사소통의 자유로움은 단체 경기인 축구에서 조직력 및 전체 경기력을 상승시켰다.
(2) 선수들 간에 자발적인 경쟁의식을 유도했다.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베스트 일레븐을 히딩크는 미리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선수들을 끝까지 테스트하겠다고 했다. 선수들은 자기 이름을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기량

연마에 힘썼다.
(3) 기초 체력 강화다. 전통적으로 체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어 왔던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정확히 조사, 평가함으로써

과장된 요인들을 정리하고, 선수 개개인에게 체력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시켰다. 체력 훈련 강화는 선수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4) 과학적 데이터에 의한 철저한 선수 분석이다. 세 번에 걸친 기초 체력 테스트 외에 전술 소화 능력, 개인기, 정신력 등을선수별로 데이터하고 다양한 분석 기법을 통하여 해결책을 제시해, 최강의 멤버를 구성할 수 있었다.
(5) 강팀을 통한 테스트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통하여 大敗에도 불구하고 경험을 쌓도록 했다.


“나는 험난한 길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길이 옳다는 것을 확신한다.” [Gus Hiddink]
“준비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에도 나는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당신들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6월을 기다려 왔다. 세계 유명 축구팀들이 우리를 비웃어도 반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월드컵에서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낮은 전력의 팀들을 격파하면서 얻는 값싼 승리가 아니다.

만약 그러한 길을 택했다면 그 과정에서 나오는 승리로 인해 한국 국민들은 열광하겠지만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세계 일류 팀이 되길 원한다면 더욱 강력한 팀과 싸워 나가야 한다. 질 때 지더라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그들과 1대 1로 부딪쳐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그러한 준비에서 나오는 패배로 인해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패배 뒤에 오는 값진 월드컵에서의 영광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월드컵에서의 승리는 내가 원하고 또한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Gus Hiddink]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한국팀의 첫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지시하고자 하는 점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노력했으며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

유럽의 톱 클래스 선수들은 스스로의 생각이 강하고 개성이 탁월하다. 그들 사이에는 프로라는 의식이 있을 뿐,

하나의 팀으로서, 아니 한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로서의 사명감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월드컵이란 무대를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그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 왔다.이러한 한국 선수들의 마음가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실력이 떨어지면 남보다 더한 노력으로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선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의

선수들보다 우월하다. 이러한 한국 축구의 기본 잠재력은 일찍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Gus Hiddink]